‘아름다운 전망’이라는 뜻을 가진 벨베데레 궁전은
‘유겐 사보이’ 공의 여름 별장으로 지어졌습니다.
‘유겐 사보이‘ 공(Prince Eugene of Savoy)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명장인데요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워
합스부르크 왕가로부터 막대한 부와 명예를 받은 귀족입니다.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 스타일로 지어진
프랑스식 정원과 ’유겐 사보이‘ 공의 거주 및
사적 공간으로 지어진 하궁(1714~1716)
그리고 의전, 예술 전시, 연회 등 공적 목적의 상징적 건물인
상궁(1717~1723)으로 이루어져 있는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이 벨베데레 궁전입니다.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인 상궁은
흰색이 주를 이루는 외형임에도
화려함과 우아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건축물입니다.
우아한 귀부인 같은 느낌의 건물을 사진으로 담아보고
간단히 정원도 돌아보면서 외부를 즐긴 후에
4시 30분으로 예약된 입장 시간에 맞춰
궁의 내부로 들어갑니다.

상궁 안으로 들어서면 건물 외부의 흰색톤과 조화를 이루는
환한 느낌의 흰색 벽면과
큰 창을 통해서 제공되는 풍부한 채광이
전체적으로 화사한 느낌을 선사합니다.

벨베데레 상궁의 마블홀로 들어서면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천장화가 시야를 사로잡습니다.
마블홀의 천장화를 보면
평평한 천장에 그려진 그림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조각이 돌출된 입체 구조물처럼 보이는데요
바로크 회화의 대표적인 기법인
‘트롱프뢰유’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트롱프뢰유는 프랑스어로 ‘눈을 속이다’라는 뜻으로
트롱프뢰유 화법이란 실제로는 평면인 곳을
마치 조각된 건축물처럼 보이게 그리는 화법입니다.
천장을 실제보다 더 높고 웅장하게 느끼게 하는
심리적 건축 효과를 위해서
바로크 시대의 화가들이 많이 사용되었던 화법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홀의 천장화에서도 평면에 그린 그림임에도
조각된 건축물인 것처럼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트롱프뢰유 화법을 만날 수 있는데요
건물 내부 구조에 가짜 창이나 허구의 건축 기법을 사용해서
입체감과 시각적 깊이를 더하는
바로크 회화의 기법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상궁의 2층 창을 통해서 내려다보니
벨베데레 정원의 전경과 정원 끝에 자리한 하궁의 모습,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베엔나 시가지의 전경까지
멋진 전망이 펼쳐집니다.
이곳에서 ‘아름다운 전망‘이라는 뜻을 가진
벨베데레 이름의 의미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되네요.

벨베데레 궁전의 정원은 프랑스의 베르사유 정원을 표방한
바로크식 궁정 정원입니다.
정원의 설계자는 베르사유 정원을 설계한
‘르 노트르’의 제자인 ’도미니크 지라르‘ 로,
직접적으로 베르사유 정원의 양식과 원리를 계승했다고 해요.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프랑스식 바로크 정원의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요
전체 정원이 중심축을 기준으로 좌우가
거울처럼 대칭을 이루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식물은 자유롭게 자라기보다 정형적으로 다듬어서
디자인의 일부로 사용되고
색채보다는 형태와 선의 미를 중시하는 것이
프랑스식 정원의 특징인데요
낮은 관목을 이용해서 대칭적 무늬를 만든 화단도
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비엔나의 현대적인 빌딩 모습들을
잠시 사진으로 담아보고 이제 본격적으로
벨베데레 궁에 보관된 예술 작품을 만나러 가봅니다.

나폴레옹이 빨간 망토를 두르고
앞다리를 들고 있는 백마에 올라타서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린 이 그림~
“여기 말고도 어디에선가 또 본 것 같은데…”
네 그렇습니다.
이 그림은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화가인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가 그린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인데요
총 다섯 개의 버전이 존재합니다.
그림의 구도와 포즈가 비슷한 다섯 개의 그림은
모두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진품인데요
저는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베르사유 궁전에 전시된 두 개의 그림을 본 적이 있었어요.
이곳 비엔나의 벨베데레 궁전에서 또 하나를 보았으니
다섯 개의 같은 그림 중 세 개를 직접 본 셈이네요.
그렇다면 나머지 두 개는 어디에 있을까요?
나폴레옹의 왕비인 ‘조세핀’의 요청으로
가장 먼저 그려진 그림은 프랑스의 말메종 궁에 있고
다른 하나는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샤를 로텐 부르크 궁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네요.
언젠가는 다섯 개의 그림을
모두 볼 수 있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드디어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상징주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 – 1918)를
만나러 갑니다. 클림트는 빈 응용미술학교에서
인테리어 장식과 금세공 디자인을 공부하였고
초기에는 극장 천장화나 궁정 장식 등
전통적 역사화를 제작했는데요
1897년에 비엔나 분리파를 결성하고
기존 아카데미 예술 제도에서 독립하여
작품의 전환점을 마련합니다.
비엔나 분리파 시절, 클림트는
귀족 및 부르주아 가문 여성들의 초상화 의뢰를 많이 받았고
이는 클림트의 주요 수입원이자 명성의 원천이 되었다고 하네요. 그가 그린 귀부인의 초상화들을 이곳에서 볼 수 있는데요
초기 작품인 ‘소냐 크니프스‘(Sonja Knips)를 먼저 만나봅니다. 클림트가 1897-98년에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작품은
우아한 드레스의 스타일이나 화사한 색감이
당시 중산층 여성 초상에서 드러나는
패션의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클림트가 1906년에 그린 유화입니다.
그림 속의 여인은 당시 기술자의 아내이며
부유층 계급에 속했던 인물인 ‘프리차 리들러’ 인데요
그림의 특징을 보면 인물의 얼굴과 드레스는
비교적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배경과 의자는 매우 장식적이고 추상적으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특히 금박과 은박 등의 기하학적 패턴이 곳곳에 사용되어
장식 미술적 요소가 강한데요
인물의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장식적 배경의 대비를 볼 수 있으며
클림트가 인물 초상에서 장식미와 회화성을 결합한
대표적 예를 보여주는 작품이 이것이라고 합니다.

클림트의 말년에 그려진 ‘Johanna Staude’의 초상화도
눈여겨봐야 할 작품입니다. (1917-18)
당시 오스트리아의 이혼녀이며
언어교사였다고 전해지는 이 여인은
짧은 머리 스타일을 하고 검은 깃털 목도리와
푸른색의 잎사귀 무늬가 들어간 옷을 입고 있는데요
배경은 오렌지톤으로 의상과 대비되는
강렬한 색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전의 장식적 황금기 스타일에서 한 단계 나아가
모던한 여성상을 표현한 것으로 평가되는 작품입니다.

앗~~ 이거다~~~~


드디어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표작
‘The Kiss’(1907-08)를 만납니다.
키스는 그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작품인데요
벨베데레 궁전에 소장되어 있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회화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은 1908년 오스트리아 정부가 구입한 직후부터
벨베데레 소장품이 되었고
1909년부터 지금까지 벨베데레 궁에서 전시 중인데요
그 이후로 벨베데레 궁전에서만 상설 전시되고
해외 전시나 임시 대여는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는 ‘키스’가 오스트리아에서
국보급 유산으로 취급되고 있는 이유라고 하네요.
잠시 넋을 놓고 금박을 입힌 효과로 인해서
방금 그려진 그림처럼 반짝반짝한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를 감상합니다.

그림 아래쪽에서 ‘구스타프 클림트’의 값진 사인을 볼 수 있네요.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진 사인일 텐데요
과연 그 가치가 얼마나 될까 새삼 생각해 봅니다.

클림트의 시그니처 작품인 여인들의 초상화 외에도
보리수가 있는 공원의 가로수 길을 묘사한
풍경화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클림트가 1912년에 그린 풍경화인데요
그림의 제목은 ‘캄머 성 공원의 길’입니다.
이 작품의 특징은 인물 중심이 아닌
자연 풍경을 주제로 한 풍경화로,
클림트가 인물작업 외에도
풍경 영역에서 보여준 실험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벨베데레 궁전에 오시면
또 한 명의 유명한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인
‘에곤 실레‘ (Egon Schiele)의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에곤 실레’는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로
‘구스타프 클림트‘의 제자이자
오스트리아 빈 분리파의 후계자로 평가되는데요
그의 그림을 보면 인물화는 현실적인 아름다움보다
인간의 내면과 불안, 욕망, 고독을 표현합니다.
이 초상화의 제목은 ‘에두아르트 코스막‘으로
초상화의 주인공은 실레의 주요 후원자였다고 해요.
그의 초상화는 실레가 인간 내면의 불안을
예술적으로 드러낸 초기 대표작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실레는 자화상을 자주 그렸으며,
인간의 신체를 왜곡된 자세로 묘사했으며
여성의 누드 역시 주된 주제로,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묘사였기에
논란이 많았다고 하네요.
이 작품은 포옹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The Embrace‘인데요 실레의 후기 작품 중 하나라고 합니다.
실레 특유의 왜곡된 신체 표현과 강렬한 윤곽선,
거친 붓터치의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실레는 1890년 오스트리아의
툴른 안 데어 도나우에서 태어났는데요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유럽을 휩쓸 때
그의 아내 ’에디트‘가 임신 중 사망했고,
실레 자신도 그로부터 3일 뒤 2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당시에 실레는 표현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었는데요
만약 더 오래 살았다면 현대미술사에서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평가되는,
아깝게 절명한 화가입니다.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작품 외에도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어요. 이 작품은 프랑스 오베르-쉬르-우아즈(Auvers-sur-Oise)
인근 들판 풍경을 그린 작품으로,
‘고흐‘가 생애 마지막 해에 집중했던 풍경화 중 하나라고 합니다.

벨베데레 궁전은 유명한 미술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 외에도
오스트리아 국가 조약이 체결된 역사적인 장소라는 점에서도
방문해 볼 이유가 있는 곳입니다.
오스트리아 국가 조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국의 점령을 종식시키고
오스트리아가 독립과 중립을 회복한 역사적 조약인데요
1955년 5월 15일, 벨베데레 궁에서
오스트리아 국가조약이 체결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0년 동안의 연합국 점령이 끝나게 됩니다. 그러한 이유로 오스트리아 국민들에게 벨베데레 궁전은
역사적으로는 독립과 자유의 상징이고
정치적으로는 중립국으로의 출발점으로,
국가적 자부심이 깃든 의미 있는 장소라고 합니다.
비엔나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
쇤부른 궁전과 벨베데레 궁전 중
한 곳만을 선택해서 봐야 한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벨베데레 궁전을 추천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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